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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여행작가]곡성 동리산 태안사 가는길

글쓴이 : 박성용기자 | 작성일시 : 16-06-24 07:29
Q  문화가 산책시간입니다.
오늘도 내고향tv남도방송 정수정 대표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A  장마때는 후덥지근한 날의 연속이죠?
이럴 때 시원한 숲길이 그리울때인데요,
푸른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온
푸른 숲이 반기는 곡성 동리산 태안사로 떠나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Q 태안사가는길 앞장서시죠?

A  태안사로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가다
석곡 나들목으로 접어들구요,
18번 국도라는 표지판을 따라 우측으로 보성에서 발원하여
순천을 거쳐 곡성을 따라 흘러가는 대황강을 끼고
호젓한 강변의 운치와 함께 14km 정도 가면 되구요,
또 다른코스 곡성ic로 들어와 곡성읍 섬진강기차마을을 지나 섬진강을 따라내려오다 압록에서 보성강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길에 왼편으로
태안사이정표를 보면서 오를 수 있죠,

Q  곡성태안사가는 길은 아직도 개발의 흔적이 없는 땅으로 옛 농촌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죠?
A  깊은 산골짜기를 따라
한낮 땡볕에도 굴하지 않는 푸르른 숲길은
시원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죠,
섬진강과 대황강이 만나는 압록 주변의 이른 아침 풍경은
물안개에 젖어 번저오는 모습에 반하게 되는데요,
그 풀섶과 바위 사이로 웅크리고 앉아
먹이감을 기다리는 백로나 왜가리가 반기고 있구요,
그 강둑을 따라 
논두렁으로 향하는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과
경운기의 시금털털한 소리와도 마주칩니다.

Q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강물의 속도와 맞춰 대황강의 풍경에 빠져오는 시간이네요~,

A  여유와 함께 찾아온 평화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논두렁 밭두렁을 잇는 길을 따라
싸목싸목 가다보면 ‘태안사 가는 길 7km’라는
이정표가 반기고
 태안사로 가는 길은 입구부터가 기분이 좋아지죠,
태안사가는길이 좋은데는 이유가 있죠,
오르는 길이 반듯하지 않아 좋고
동리산 태안사에서 만난 길도 반듯하지 않은 길의
연속이어서 지루하지 않죠,

Q  반듯하지 않은 길, 태안사처럼 운치가 있으면 더욱 좋죠?태안사 들어가는 길 그 운치를 맛보며 다녀봐야 할 것 같은데자세히 전해주시죠?
A  시원하게 펼쳐진 섬진강을 이어 대황강변을 따라
거슬러 올라와 숲 사이를 파고 들어가는 길에서 만난 절
곡성 동리산의 태안사는 지금 여름한낮 더위를 피하기에
제격입니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계곡을 끼고 휘돌아 가구요,
계곡을 가로질러 판자로 다리를 놓고
그 위로 지붕을 이어올린 능파각을 만납니다.

Q  구불구불한 길에서 만난 능파각의 운치도 멋질 것 같은데요?

A  ‘능파(凌波)’란
가볍고 아름다운 미인의 걸음걸이를 나타내거나
물결 위를 건너는 것을 뜻하는데요,
태안사에서는 계곡의 물과 주변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능파’라고 했다고 합니다.
능파각은 신라 문성왕 12년(850)에 혜철선사가
태안사를 창건할 때 지었다고,
지금의 능파각은 조선 영조 43년(1767)에 복원된 것이구요,
다리와 금강문과 누각을 겸한 것으로 일석삼조인 셈이죠,
능파각을 건너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Q  바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이죠~,
이름과 함께 능파각이 멋스러울 것 같은데요?
A  태안사 능파각은 계곡 양쪽의 암반을 기초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굵은 통나무를 걸쳐놓고 누각을 지은 것으로
다리와 누각을 겸한 모습입니다.
누각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풍광과
누각에서 내려 보는 풍광 모두가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구요,
이런저런 생각에 걷다보면 어느덧 태안사에 오르게 되죠,

Q  동리산 태안사 역사도 깊을 것 같은데요?

A  동리산태안사사적에 의하면
태안사는 경덕왕 원년(742) 2월에 이름 모를 스님 세 분이
개창하였다고 전합니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뒤 혜철선사가
당나라 서당지장에게 법을 전수받고 귀국해
이곳에 동리산파를 이룬 것이 문성왕 9년(847)이죠,
우리나라 자생풍수의 원조인 도선국사도
이곳 태안사에서 20세부터 23세까지 혜철에게 가르침을 받고 깨쳤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광자대사(864∼945년)가 크게 중창하였고,
이때 가람의 규모는 건물 총 40여 동에
110칸이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절의 규모가 컸다고 하구요,
특히 조선 초기는 태종의 둘째아들 효령대군(1396-1486)이
머물렀구요,
이곳 태안사는 효령대군의 원당사찰이기도 했죠,
태안사는 한국전쟁 때 많은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현재의 건물은 능파각과 일주문 두 곳 을 제외하고는
그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Q  전란에서 살아 남은 건물은 능파각과 일주문 두 곳뿐이었네요?

A  지금은 다른 절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비포장길로
길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길이 너무 아름다워 차를 타고 먼지를 날리게 가기에는 아까운 길이죠,
어떤 시인은 이런 길을 ‘데리고 살고 싶은 길’이라 표현했구요,이렇게 태안사 가는길은 마치 꿈 속을 거니는 듯하죠,

Q  데리고 살고 싶은 길 오래도록 잘 간직해야 할 것 같은데요?

A  얼마나 좋은면 데리고 살고 싶은 길로 표현하겠습니까?
적인선사조륜청정탑, 광자대사탑, 광자대사비, 대바라, 동종이이곳 태안사에 보물이죠,

Q  보물도 많이 간직하고 있네요~

A  능파각을 지나 걷는 길은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된 느낌이 드는데요,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동리산태안사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는 일주문 앞에서게 되죠,
일주문을 지나면 태안사가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동리산은 봉두산이라고도 불리구요,
절 이름도 대안사(大安寺)로 불리어 오다 태안사로 바뀌었죠, ‘동리(棟裏)’는 오동나무숲을 뜻한다고 해요,
봉두(鳳頭)는 봉황의 머리구요,
봉황은 오동나무숲이 아니면 앉지 않는다고 하는 전설의 새죠,
우리나라 지명에 봉황새 봉(鳳)자가 들어있으면
풍수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곳의 풍수가 바로 봉황이 날개를 안으로 접으면서
둥지로 들어오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태안사는 그 봉황의 둥지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죠,

Q  봉황이 날개를 안으로 접으면서
둥지로 들어오는 형국이라 좋네요~,

A  넘치는 기세를 오동나무숲속으로 감싸 안으려는 의도에서
동리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동리산은 봉황이 먹고 산다는 오동나무 열매가 열린 숲이 있는 산이죠,
 절 이름인 태안(泰安, 大安 : 크게 편안함)의 뜻도
그 지세를 감안해 봉황이 아주 편안하게 깃드는 절이라는
풍수적인 사고가 담겨 있는 사찰입니다.

Q  태안사를 주변으로 함께 둘러볼 곳이 있다면?

A  조태일문학관입니다.
조태일 시인은 전남 곡성 출생으로 시 전문잡지 <시인> 주간과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를 역임한 진보적인 작가로 유명한데요,
1970년대 참여시의 한복판에서 쓴 연작시 <식칼론>은
독재정권의 폭압하에서 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지표와 역사의식을 표현했던 작가죠,
1975년 발간된 시집 <국토>에는
남북 분단의 현실과 허구를 고발하고, 비판하면서
성실하고 건강한 민중성에 토대를 두었던 작가죠,
조태일 시인은 곡성의 태안사에서 태어나
우리 국토의 숭고함을 작품에 녹여낸 작가입니다.

Q  대황강을 따라 먹을거리도 다양하죠?

A  섬진강과 대황강하면 참게와 다슬기를 빼놓을 수 없죠?
그 중 다슬기는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어
간 기능을 회복하는 효능이 있어 숙취 해소 식품으로 인기가 좋구요,
또 피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두통,
어지럼증에 효과적이구요,
피부미용, 위장병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죠,

특히 섬진강과 대황강의 다슬기는
뽀얗게 우린 국물맛이 일품입니다.
주재료인 수제비의 풍성하고 쫄깃한 식감은 한층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죠,
Q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 6월~!
더위를 식히러 떠난 곡성으로의 여행에서 이열치열 다슬기 수제비로 건강한 여름나시길 바랍니다.
오늘 곡성 동리산 태안사로의 여행 잘들었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내고향tv 남도방송 정수정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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